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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한 일상

빈츠의 추억

by MrㅡLee 2021. 9. 16.


2003년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던 시기 나는 연병장 구석에 동기들과 함께 쪼그려 앉아 제초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을 때다.

저 멀리서 각자 제멋대로 군복을 걸친(입었다고는 표현 못할정도로) 한무리의 아저씨들이 우리쪽으로 몰려왔다.

놀리는 듯하면서도 측은한 느낌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낄낄대던 그들은, 교관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갑자기 주머니에서 담배와 과자들을 꺼내 우리쪽으로 던져줬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재빠르게 손에 잡히는 것들을 주머니에 우겨 넣기 바빴다.

기습적으로 그 일이 벌어졌고, 그들은 다시 낄낄 거리며 먼지 사이로 사라져갔다.

손안에 작은 과자를 하나 낚아챈 나는 혹여나 교관에게 들킬까봐 그 짧은 순간 팬티안으로 과자를 넣었고, 제초 작업이 끝나 내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관물대에 은밀히 숨켜뒀다.

다행히 그들과 우리의 기습작전은 들통나지 않았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갔다.

순검도 무사히 끝나고 잠자리에 누워 교관이 올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 두시간을 기다렸던것 같다.

몰래 몰래 관물대에서 과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포장을 벗기고 입에 넣는 순간 머리가 띵 해질 정도의 달콤함이 느껴졌다.

그 초콜릿들을 오몰오몰 입안에서 녹여먹고 과자를 깨물며 고소함을 느끼던 순간 옆자리에 누운 동기녀석이 “뭐여”하는 원망섞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과자가 너무 작았고, 자는 줄 알았다고 속삭이며 미안함을 전했고, 동기녀석에게 녹은 초콜릿이 남아 있다며 과자 포장지를 주었다.

그는 깨워서라도 줬어야지 눈을 부라리면서도, 초콜릿 맛이라도 보는게 어디냐는 듯 포장지 안에 녹아 남아있는 초콜릿을 핥아 먹으며, 즐거워 했다.

혹여나 포장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교관이 달려올까 조심조심, 신중히.

물론, 그 녀석에게 차마 그 과자 포장지가 하루종일 훈련과 여러 작업을 하느라 땀에 절었던 내 속옷안에 들어있던 거라고 얘기해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깨워서라도 조금씩 나눠먹을걸 하는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도 들었다.

혼자서 몰래 대부분의 것을 취하고,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먹는 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위선적인 꼴이라니.

그때 사람이란 참 나약하고 간사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것도 같다. 나 역시도.

오늘 사무실에서 깨끗하게 포장된 빈츠를 하나 까먹고 있자니, 2003년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던 그 시기 어느날 밤 어둠속에서 구겨진 빈츠 포장지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끄적여본다.

빈츠를 볼때마다, 먹을때마다 그 날의 그 시간이 떠오른다.

그 녀석에 대한 미안함과 내 부족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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