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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한 일상14

아버지의 해방일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타파하겠다는 신념을 가졌던, 그러나 역사의 흐름속에서 빨치산이라는 낙인을 뒤집어쓰고 장애를 얻었으며, 형제와 자녀에게 연좌의 상처를 유산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작은 부분들에서조차 소신을 잃지 않았던 혁명가 그 자체였던 아버지. 그렇게 올곧은줄만 알았는데 술집 여주인의 엉덩이를 두들기는 여느 다른 남자와 다르지 않아 실망스럽기만 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가 살았던 삶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주위 사람들의 평가와 가물가물했던 화자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과정을 통해 이해와 화해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들이 유머러스하게, 시나브로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은 죽음을 통해 삶에서 해방 되었.. 2023. 1. 1.
추억의 사라다 고로케 (a.k.a. 야채빵) · ‘추억의 사라다 고로케’ 우리나라의 대기업 베이커리 “뚜***“에서 3,600원에 판매하고 있는 빵이고, 요즘 내가 즐겨먹는 빵이며, 먹을 때마다 한가지 추억이 떠오르는 빵이다. 30여년전,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충북의 한 시골마을 문방구 옆에는 그 빵만 파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그 빵은 ’야채빵‘이란 이름으로 판매되었고, 가격은 단돈 100원이었다. 지금이야 단돈 100원이라고 하지만, 당시에 100원은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다. 100원이면 오락실에서 더블드래곤 두 판을 할 수 있었고, 과자를 한봉지 사먹을 수 있었다. 당시 매일 엄마께 백원만 주세요, 백원만 주세요 하고 졸랐기 때문에 내 별명은 이백원 이었던 적도 있었다. (ㅡ,.ㅡ;;) 아무튼, 기억을 더듬어 당시 야채빵과 지금 판매되는 사.. 2022. 11. 22.
페이창펀(肥肠粉) 얼마전, 칠칠치 못하게 넘어져, 우측 엄지발가락 골절상 전치 5주 치료 진단을 받고 발목까지 깁스를 감게 되었었다. 어색한 깁스 발로 낑낑거리면서 계단을 내려오던 어느 주말 아침, 아내가 유난히 측은한 눈빛으로 물었다. “뭐 먹고 싶은거 있어? 발가락 빨리 나으라고 내가 사줄게.” 그 말을 듣자 마자 눈 앞에 한가지 음식이 아른거렸다. 돼지 내장을 푹 삶아 구수하고 진한 육수에 비교적 부담이 적고 식감이 독특한 당면사리, 그 위에 아삭거리는 숙주와 푸짐하게 얹어진 곱창. 매콤얼얼한 홍유와 풍미를 살려주는 흑초를 곁들여 먹으면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겠지만, 금방이라도 뼈가 붙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 음식. “페이창펀( 肥肠粉; 곱창국수)을 먹으러 가자” 페이창펀을 먹기 위해서는 집에서 한 시간 넘.. 2022. 8. 29.
오해 “오빠, 속상한 거 있어?” 며칠 전 저녁식사 중에 갑자기 아내가 물었다. 연말이 되고 최근 회사 내 여러 일들 때문에 야근이 잦고 조금 힘들어 보여 걱정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괜찮아. 조금 힘들긴 하지만 속상할 정도는 아니야. “응??” -아! 가끔 네가 내 말 안 들을때는 속상하기도 하지. ㅎㅎ “(O_O;;;)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아내가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속상한 일 하나도 없어. 걱정하지마. “아니… 옷 수선할 거 있냐고 물어보는데 왜 이상한 말을 해?” -아…….. (-_-;;;)…. 없어……. (T_T) 밥먹자… 국제 결혼 부부의 대화 속에 오해가 난무하는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2022. 3. 19.
조카의 생일 선물 이틀 전 서울 출장 중에 카톡 메시지가 왔다. [외삼촌,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올해 아홉살 생일을 맞은 조카가 보낸 메시지였다. [내일은 삼촌이 아주 아주 사랑하는 M1 생일] [정답!] [M1, 삼촌한테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이 있어?] [생각해볼께요] 그리고, 생일날인 어제 저녁까지 조카에게 연락이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 장난스럽게 물었다. “M1, 생일축하해. 삼촌에게 어떤 선물이 받고 싶은지 생각 안해봤어? 혹시 선물이 필요 없니?” “……네…….” 그 때 수화기 저 멀리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머, M1, 외삼촌께서 선물 사주신다는데 왜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 너 모모(내 조카들은 외할머니인 어머니를 엄마의 엄마라는 뜻으로 ‘모모’라고 부른다)에게 멋진 운동복이 입고 .. 2022. 3. 19.
갑작스런 응급실행 인과(因果);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결과는 발생했는데 원인이 뭔지 모를 때 누구나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어젯밤에 내가 그랬다. 퇴근해서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멕시칸 음식을 맛있게 즐겼다. 소고기 스테이크와 닭고기 구이, 여러 소스와 야채를 또띠아에 쌈싸먹고 배부르게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쇼파에 앉아 뉴스를 보면서, 귀여운 고양이 레미랑 놀아주고 있는데 갑자기 온몸이 간질간질 한 것이 아닌가? 당연히 처음에는 고양이 털 때문인가 생각들었지만, 작년에 진행했던 알러지 검사에서는 일상 생활 중에 반응 되는 물질이 없다는 답변을 받은 기억이 났다. 간지러운 곳들을 자세히 보니 두들두들 피부 발진이 발갛게 일어나고 있었다. 온 몸에… 부랴부랴 아내를 불러 온 몸을 보여줬더.. 2021.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