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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한 일상

조카의 생일 선물

by MrㅡLee 2022. 3. 19.


이틀 전 서울 출장 중에 카톡 메시지가 왔다.

[외삼촌,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올해 아홉살 생일을 맞은 조카가 보낸 메시지였다.

[내일은 삼촌이 아주 아주 사랑하는 M1 생일]

[정답!]

[M1, 삼촌한테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이 있어?]

[생각해볼께요]

그리고, 생일날인 어제 저녁까지 조카에게 연락이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 장난스럽게 물었다.

“M1, 생일축하해. 삼촌에게 어떤 선물이 받고 싶은지 생각 안해봤어? 혹시 선물이 필요 없니?”

“……네…….”

그 때 수화기 저 멀리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머, M1, 외삼촌께서 선물 사주신다는데 왜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 너 모모(내 조카들은 외할머니인 어머니를 엄마의 엄마라는 뜻으로 ‘모모’라고 부른다)에게 멋진 운동복이 입고 싶다고 했었잖아. 삼촌께 운동복 한벌 사달라고 말하렴.”

“…….”

그래도 조카는 답이 없었고, 나는 차근 차근 다시 물었다.

“M1, 삼촌이 M1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사주려고 하는거야. 모모 말씀처럼 운동복도 좋고, 네가 갖고 싶었던 장난감이 있으면 그걸 말해도 좋아. 아무것도 안 받으면 삼촌이 섭섭할 것 같아.”

“…어…그럼…”

조카는 생각을 정리했는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삼촌, 복순이를 계속 키우려면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요. 그러니까 수술비에 보태게 생일 선물로 만원만 주시면 안돼요?”

조카가 얘기를 끝낸 뒤, 전화기는 어머니가 넘겨 받아 통화가 잠시 이어졌고,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댁 마당에는 복순이라는 개를 기르고 있는데 얼마전에 새끼를 여섯마리나 낳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가족들은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 있고, 감당할 수 없어 수컷 강아지 한마리만 키우고 복순이랑 다른 강아지들은 다른 집에 입양을 보내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카들이 복순이랑 정이 많이 들었는지, 절대 안된다며 울고불고 고집을 피웠고, 그래서 누나랑 매형이 조카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려는 의미로, 직접 돈을 마련해서 중성화 수술을 시킨다면 복순이를 계속 키울 수 있다고 약속을 했나보다. 그런데 용돈을 아무리 아껴쓴다해도 수술비 전부를 모으기는 너무 막연했나 보다.

어린 마음에 갖고 싶은 장난감과 입고 싶은 옷이 눈에 아른거렸을텐데, 반려견과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조카가 내심 기특했고, 차마 수술비 전부를 얘기하지 못해 만원만 보태달라고 얘기한 조카가 참으로 귀여웠다.

“M아, 수술비를 모으기로 한 것은 엄마아빠랑 한 약속이기 때문에 삼촌이 전부다 줄 수는 없어. 대신 3분의 1을 모모를 통해 보내줄게. 나머지 돈은 M1이랑 M2가 한번 모아보고, 정 어려우면 그때 다시 삼촌에게 얘기하렴.”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홉살의 나에게 삼촌이 선물을 주신다고 했다면 어떤 대답을 했을까?

집에 돌아와 이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도 조카를 기특해 했다. 그러더니 조카가 입고 싶어 했다는 운동복은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다.

나는 선물을 수술비로 골랐기 때문에 운동복은 없는 거라고 답했다.

아내에게 혼났다. 그리고 아내는 지금 내 옆에서 조카의 운동복을 알아보고 있다.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조카의 결정은 하나였던 선물을 두 개로 만들었다.

어리게만 느껴지던 조카의 행동을 통해, 난 이렇게 새로운 하나를 배우고 깨닫게 된다.

M1,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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