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스테리한 일상14

빈츠의 추억 2003년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던 시기 나는 연병장 구석에 동기들과 함께 쪼그려 앉아 제초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을 때다. 저 멀리서 각자 제멋대로 군복을 걸친(입었다고는 표현 못할정도로) 한무리의 아저씨들이 우리쪽으로 몰려왔다. 놀리는 듯하면서도 측은한 느낌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낄낄대던 그들은, 교관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갑자기 주머니에서 담배와 과자들을 꺼내 우리쪽으로 던져줬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재빠르게 손에 잡히는 것들을 주머니에 우겨 넣기 바빴다. 기습적으로 그 일이 벌어졌고, 그들은 다시 낄낄 거리며 먼지 사이로 사라져갔다. 손안에 작은 과자를 하나 낚아챈 나는 혹여나 교관에게 들킬까봐 그 짧은 순간 팬티안으로 과자를 넣었고, 제초 작업이 끝나 내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관물대에 은밀히 숨.. 2021. 9. 16.
통풍에 대한 단상 1. 2015년 3월로 기억한다. 당시 중국서 다니던 회사에서 나름 중책을 맡아 몇달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무리해 일을 했었다. 그 일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그만큼 술 자리도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나름 한가했던 어느 토요일 저녁, 뭔가 해먹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집 근처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사다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밤 부터 오른발 엄지발가락 부위를 바늘로 찌르고 칼로 베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운동도 심하게 한적 없는데, 어쩌다 엄지발가락 부위를 이렇게 심하게 접질렸을까?' 생각하며 냉찜질만 하며 일요일 하루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있다가, 월요일 아침 찾은 병원에서 바람만 스쳐도 아픈 병 '통풍'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 ".. 2021. 7. 19.
제주도 방역 행정, 이해되지 않는다 어제 7월 14일 저녁, 제주특별자치도가 백신 접종 최우선 순위에 유흥업소 종사자를 포함시켰다는 뉴스를 접했다. 잘못 들은줄 알았고, 당연히 오보일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오보가 아님을 확인했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의 수요 공급이 불균형적인 현 상황에서 백신 접종은 코로나19 시국에 조금 더 자유롭고 폭 넓은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혜택으로도 볼 수 있다. 백신 접종자들은 집합금지 인원에 포함되지 않고, 해외 출장 등의 제한에서 보다 자유롭다. 그런데, 그 혜택을 유흥시설 종사자들에게 먼저 주겠다는 정책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것인가? 유흥이란 무엇인가?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노는 것이 유흥 아니던가. 그런데, 유흥업 종사자들에게 백신 접종 최우선 순위를.. 2021. 7. 15.
팻로스 증후군 사랑스럽던 K가 갑자기 떠나게 되어 우리 부부의 슬픔이 더욱 크다. 특히, 아내는 제대로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며, K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누군가는 애완동물의 죽음에 이렇게까지 슬퍼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것을 유난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실체가 없는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속 허구 캐릭터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 흘리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계 덩어리인 자동차를 마치 생명체마냥 끔찍히 아끼며, 하루가 멀다하고 세차하고, 아주 작은 흠집에도 분노하며, 각종 최고급 오일과 부품으로 바꾸며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영화 ‘캐스트어웨이’에서는 무인도에 고립된 주인공이 본인의 피 묻은 배구공 ‘윌슨.. 2020. 10. 28.
안녕... K K가 떠났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항상 곁에 있던 K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무지개 다리 건너편으로 나를 떠났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아내가 외롭고 힘들때부터 함께 지냈다던 K를 만날 수 있었고, 나도 그때부터 8년이란 시간을 K와 함께 지냈다. 내 발 아래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다가 발라당 누워 배를 내 보이던 K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사소한 일로 아내와 다투고 쇼파에 누워 잠을 청하던 날 마치 내 편을 들어주는 것 처럼 내 품을 파고들어와 그르릉 그르렁 나를 위로해주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던 K의 숨소리와 감촉을 기억한다. 티비 프로그램에 집중하느라, 쓰다듬어 달라고, 놀아 달라고 보채는 걸 무시했더니, 내가 아끼던 스마트폰을 앞발로 툭툭 쳐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리고 모르는 척.. 2020. 10. 27.
우유 한팩이 가진 아름답고 선한 영향력 먼저 아래의 한겨레 신문 기사를 읽어보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8&aid=0002509058 우유 한팩으로 당신이 무사한지 묻습니다 가족·이웃·친구를 만나고 헤어질 때 “안부 전해 주세요!” 라는 말을 한다. 상대는 “알았어요, 안부 잘 전할게요.” 라고 답한다. 의례적이지만,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걱정할 때 마음이 편해 news.naver.com "우유 한팩이 가진 아름다운 영향력"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은 서울의 한 교회에서 독거노인 고독사 방지를 위해 지난 2003년부터 진행해온 캠페인이다. 매일 아침 독거노인 가정에 무료로 우유를 배달하고, 현관에 우유가 2개 이상 쌓일 경우 배달원이 .. 2020. 9. 2.